재단법인 문화스포츠과학재단 | 이사장: 금방섭 |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시민대로 327번지 11-41
info@iocss.org · 영문사이트: iocss.org
재단 소개 스포츠와 AI 문화와 AI 북한 공예품 전시관 발간물 담론 연구 분야 뉴스레터 구독

[JCA] Pathways to Dictatorship and Democracy: Indonesia and Barrington Moore*

Ghost
7 min read
Asia Watch News

출처: Journal of Contemporary Asia  |  게시일: 2026-08-19

분류: 정권·선거 변동  |  키워드: democracy, indonesia

📄 영문 전문 보기 (iocss.org)  |  원문 출처 바로가기


배링턴 무어(Barrington Moore Jr.)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1966)은 비교정치학의 고전으로서, 근대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부르주아지, 지주 계급, 농민 계급 간의 계급 동맹 구조가 어떻게 민주주의 혹은 독재라는 상이한 정치체제를 낳는가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저작이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무어의 비교 역사 분석 틀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의 체제 변동을 이해하는 데 강력한 해석 도구로 남아 있다. 『Journal of Contemporary Asia』에 게재된 이 논문은 무어의 이론적 유산을 인도네시아의 역사적 궤적에 적용함으로써, 식민지 독립부터 수카르노의 교도 민주주의(Guided Democracy), 수하르토의 신질서(New Order) 권위주의 체제, 그리고 1998년 레포르마시(Reformasi)에 이르는 복합적인 체제 전환 과정을 재독해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단순한 지역 연구를 넘어, 비교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글로벌 남반구 민주화 이론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검토하는 작업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무어의 이론적 핵심 명제는 "부르주아지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No bourgeoisie, no democracy)"는 테제로 압축된다. 그는 영국, 프랑스, 미국의 사례를 통해 도시 상공업 계급이 봉건적 지주 계급으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하고 농민을 동원하거나 배제하는 방식에 따라 자유민주주의로의 경로가 열린다고 보았다. 반면 지주 계급이 국가와 강하게 결탁하면서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주도할 경우 파시즘적 독재로 귀결되고, 피폐한 농민이 혁명적 에너지를 발산할 경우 공산주의 혁명으로 이어진다는 세 가지 경로 분석은 비교역사사회학의 표준적 분류 체계가 되었다. 본 논문은 인도네시아 사례가 이 세 가지 경로 중 어디에도 깔끔하게 포섭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무어의 틀을 동남아시아적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재구성한다. 식민지 네덜란드 자본주의가 인도네시아 사회 구조에 남긴 유산, 즉 취약한 국내 부르주아지와 군부·관료 엘리트의 강한 지위는 무어가 상정한 계급 행위자들의 역할 분포와 현저히 상이하며, 이 간극이 인도네시아 체제 변동의 특이성을 이해하는 열쇠임을 논문은 제시한다.

인도네시아의 정치사를 계급 분석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1965년 9·30 사건과 그에 따른 수하르토 집권은 무어적 의미에서 '위로부터의 혁명'이 어떻게 극단적 폭력을 수반할 수 있는가를 예시하는 사례로 독해될 수 있다. 수하르토의 신질서 체제는 군부-테크노크라트 동맹을 핵심 지배 블록으로 삼아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으로 대표되던 농민·노동자 세력을 물리적으로 소멸시키고, 자원 배분을 통해 부상하는 이슬람 상공업 세력 및 화교 자본을 국가 후원 아래 종속시켰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정치-경제 연결망, 즉 크로니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는 자율적 부르주아지의 성장을 구조적으로 억제하였다. 로빈슨과 하디스(Robison & Hadiz)가 분석했듯이, 수하르토 체제 붕괴 이후 등장한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역시 올리가르키 세력의 재편을 통해 실질적 권력이 구 엘리트 집단에 의해 계속 장악되는 양상을 보였다. 논문은 이 점에서 1998년의 민주화가 무어가 기대한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승리가 아니라,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형성된 올리가르키가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경기 규칙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재구성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이 논문이 개발협력 및 ODA 정책 담론과 교차하는 지점은 결코 협소하지 않다. 국제 개발 기구들은 오랫동안 거버넌스 개선, 시민사회 강화, 법치주의 확립을 민주주의 공고화의 핵심 수단으로 설정하고 이를 ODA 조건부성에 연계해 왔다. 그러나 무어적 분석 틀이 시사하는 것은, 정치체제의 변동은 단기적 제도 이식의 결과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계급 구조와 국가-사회 관계의 역사적 응결물이라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사례는 이 통찰을 구체적으로 실증한다. 레포르마시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된 지방분권화(decentralization)는 중앙 권위주의를 약화시켰지만, 동시에 지방 수준의 보스 정치(bossism)와 엘리트 포획(elite capture)을 심화시키는 역설을 낳았다. 이러한 현실은 시민사회 조직 지원이나 선거 관리 역량 강화와 같은 통상적 민주주의 지원 프로그램이 구조적 계급 관계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ODA 실무자들은 수원국의 표층적 제도 변화 이면에 존재하는 역사적 계급 구조와 권력 관계를 보다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학술 연구자와 정책 실무자 모두에게 이 논문이 제기하는 가장 중요한 미래 지향적 과제는, 비교 정치경제학적 개념 틀의 지역화(localization)와 이론적 쇄신이다. 무어의 유럽 중심적 계급 범주를 동남아시아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분석의 정밀도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인도네시아의 사례는 군부, 이슬람 조직, 화교 상업 네트워크, 그리고 급성장하는 디지털 올리가르키 등 무어가 상정하지 않은 새로운 행위자들이 계급 동맹의 지형을 구성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향후 연구는 이러한 행위자들의 역할을 이론적으로 통합하는 수정된 분석 틀을 개발해야 하며, 특히 자원 국가주의(resource nationalism), 디지털 권위주의, 그리고 이슬람 정치의 부상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질적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를 보유한 민주주의 국가로서, 그 체제 변동의 경로는 글로벌 민주주의의 미래를 가늠하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IOCSS와 같은 연구 기관이 무어의 고전적 통찰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이러한 연구들에 지속적으로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원문 바로가기 →

G

Ghost

저자
관련 글

Asia Watch 관련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