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Journal of Contemporary Asia | 게시일: 2026-09-07
분류: 정권·선거 변동 | 키워드: democracy, indon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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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 이행과 권위주의로의 재편 문제는 오늘날 국제 개발협력과 세계 정치경제 담론에서 다시금 중요한 주제로 부상하고 있다. 조코 위도도 정부 이후 프라보워 수비안토 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인도네시아 정치가 보이는 신권위주의적 경향, 군부의 정치 재개입, 그리고 시민사회 공간의 위축은 단순한 일국적 현상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반, 나아가 개발도상국 전반의 민주주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 흐름과 맞물려 있다. Journal of Contemporary Asia에 게재된 이 논문은 이러한 현상을 배링턴 무어(Barrington Moore)의 고전적 비교역사사회학, 즉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이 제시한 계급 연합과 근대화 경로 이론을 인도네시아 사례에 적용함으로써, 왜 특정 국가가 민주주의로, 다른 국가가 권위주의로 귀결되는지를 구조적으로 규명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론적·경험적 의의가 크다.
무어의 원래 이론은 영국·프랑스·미국의 부르주아 혁명 경로, 독일·일본의 보수적 근대화(파시즘) 경로, 러시아·중국의 농민혁명(공산주의) 경로라는 세 가지 유형을 통해 지주-농민-부르주아지 간 계급 연합의 성격이 정치체제의 향방을 결정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논문은 인도네시아가 이 세 경로 중 어디에도 온전히 부합하지 않는 혼종적 사례임을 보여주면서, 식민지 유산으로부터 형성된 지주-관료 엘리트 연합, 수하르토 신질서(New Order) 체제하의 국가 주도 자본주의, 그리고 1998년 이후 과두 엘리트가 주도한 '엘리트 협약형' 민주화라는 독특한 궤적을 무어의 틀로 재해석한다. 특히 논문은 인도네시아에서 농업 부문의 계급 갈등이 서구처럼 혁명적으로 폭발하지 않고 국가 코포라티즘과 군부 후견주의를 통해 관리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결과 민주화 이후에도 과두 엘리트 연합이 온존하며 형식적 선거 민주주의와 실질적 권력 집중이 공존하는 '결손 민주주의(defective democracy)'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핵심 논지로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분석은 ODA와 개발협력 담론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온 '거버넌스 조건성' 문제와 직결된다. 공여국과 국제기구들은 원조 배분에 있어 민주적 거버넌스, 법치, 시민사회 강화를 조건으로 내세워왔지만, 인도네시아 사례가 보여주듯 형식적 민주주의 제도의 도입이 실질적인 계급 권력 구조의 재편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이러한 조건성은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다. 무어식 계급 연합 분석은 원조와 개발 프로그램이 종종 기존 과두 엘리트 네트워크를 우회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온 이유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이론적 자원을 제공한다. 이는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유사한 '엘리트 협약형 민주화' 국가들에서 시민사회 조직이 왜 국가-자본 연합에 맞서 실질적인 정치적 대항력을 형성하는 데 구조적 어려움을 겪는지를 비교론적으로 조명하는 데도 기여한다.
정책적 함의 측면에서 이 논문은 개발협력 실무자들에게 시민사회 지원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 단순히 NGO 역량 강화나 선거 지원에 그치지 않고, 토지 소유 구조, 자원 지대(rent) 배분, 군부-자본 유착 관계 등 심층적인 계급 정치경제 구조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또한 연구자들에게는 무어의 고전 이론이 여전히 21세기 아시아 정치 변동을 설명하는 데 유효한 분석 도구임을 재확인시켜주는 동시에, 국가 주도 자본주의와 신흥 시장경제가 결합된 아시아적 맥락에서는 이론의 수정과 확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는 비교정치경제학에서 진행 중인 '권위주의적 회복력(authoritarian resilience)' 연구와 '혼합 체제(hybrid regime)' 연구 간의 이론적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향후 IOCSS를 비롯한 개발협력 연구 공동체는 이러한 계급구조 분석을 인도네시아를 넘어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 주요국의 민주주의 후퇴 사례와 비교함으로써, 지역 차원의 정치경제적 패턴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실무자들은 시민사회 지원 사업을 기획할 때 형식적 제도 지표를 넘어 엘리트 연합의 재구성 여부를 모니터링하는 지표 개발이 시급하며, 연구자들은 무어의 계급 연합 이론을 디지털 권위주의, 초국적 자본 이동,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21세기적 변수와 결합하여 이론적으로 갱신하는 작업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궁극적으로 원조 효과성과 민주주의 공고화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데 실천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